ASIA CONNECTION Mixtape #2 – Takamiya Eitetsu (part of Little Big 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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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amiya Eitetsu SoundcloudFlower Records

He is a legendary Japanese DJ and producer, owner of Flower Records and a member of Little Big Bee. He is been in the industry since the 80s and is one of few who have seen Tokyo’s scene evolving from the inside. He also talked about of his love of Korea in the interview.

그는 DJ, 프로듀서이자 Flower Records의 오너 그리고 Little Big Bee의 멤버이다. 1980년대 부터 일본의 하우스씬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도쿄의 클럽씬이 형성되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본 인물 중 하나로 꼽을 수도 있다. 또한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This interview took place with two of his good friends.
– Jinwook: DJ, owner of Disco Surf, vinyl collector and our 29th guest.
– Gunho: Producer, electronic musician and leader of Romantic Couch.

[/vc_column_text][/vc_column][/vc_row][vc_row][vc_column width=”1/2″][vc_column_text]오늘을 너무 기다렸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영철, 진욱, 건호:  반갑습니다!

궁금한게 너무 많습니다.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영철: 저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한 소년이었죠. 초등학교 다닐 때 LP를 사서 듣기 시작했어요. 특히 제가 12~13살(‘1970-’80) 쯤 되었을 때 일본에 디스코 붐이 일어났어요.  토요일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가 개봉한 시기였죠. 자연스럽게 그런 댄스음악들을 즐기게 되었죠. 퓨전음악(재즈펑크 같은)도 들었고요.

혹시 부모님이 집에서 그런 음악들을 즐기시거나 했나요? 그런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영철: 아버지가 일본에서 ‘금강산 가극단’의 소속이었어요. 어머니 또한 그 극단의 조선 미녀가수로 활동하셨죠. 극단에 활동하시는 분들이 집에서 모임도 꽤 많이 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보며 음악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었죠.

그러면 디스코에 빠지게된 계기가 되는 곡 혹은 앨범이 있어요?
영철: ‘Earth, Wind & Fire – I Am’을 꼽고싶네요! Boogie Wonderland라는 곡이 들어있는 앨범이죠. 이걸 샀을 때 ‘그래 바로 이거야!’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칼림바라는 악기를 잘 사용한 곡들이 들어있어요. 원시느낌의 곡들이 많지요. 물론 친구들은 비틀즈나 롤링스톤즈, 딥퍼플 같은 락 음악을 많이 추천해줬지만, 별로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불과 12~13살 쯤의 이야기라니 흥미롭네요!
영철: 하하. 친척 누나가 있었는데, 디스코클럽에 데려가줬어요. 디스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죠. 사실 아이들은 들어갈 수 없던 곳이었요. 그곳에서 담배피고 열심히 춤추는 어른들을 보고 컬쳐쇼크를 받곤 했죠. 하하. 제가 살던 곳이 타츠카와(Tachikawa)란 동네였는데, 인근에 미군기지가 있다보니 흑인문화도 섞여서 흥겨운 어른 문화를 충분히 볼 수 있었고, 동경하게됬죠.

건호: 당시에 무도회장이 많았는데,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경우가 보통이었죠. 파티를 하고 싶어서 운영이 끝난 무도회장을 빌려 밤12시 부터 다시 파티를 시작했어요. 포스터도 만들어서 동네에 찌라시도 돌리고 그랬죠. 하하. 부킹같은거 말고 정말 음악과 댄스를 위한 놀이였는데 굉장히 재밌었어요.

영철: 이게 제가 19살 때 쯤 이야기에요. 비슷한 시기(‘80년대 말)에 클럽씬이 시작되었다고 봐요. 하우스, 힙합, 레게, 락, 아프로 등 다양하게 나왔어요. 그곳에서 음악 듣는걸 좋아하다보니, 제가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타츠카와가 시부야에선 전철타고 1시간 걸리는 거리였어요. 그리 시내에서 가까운 건 아니였죠. 근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시부야에서 타츠카와로 꽤 많이 놀러왔어요.

흥미롭네요. 지금처럼 소셜미디어가 발달된 것도 아니고. 프로모션하기 쉬운 땐 아니였을거 같거든요.
영철: 입소문과 플라이어 덕분인 거 같아요. 하하. 친동생이 지금은 꽤 유명한 디자이너거든요. Reggae Disco Rockers란 밴드도 하면서 디자인도 할 줄 아니 플라이어 만드는 걸 도와줬죠. 요즘은 AKB48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보아씨가 일본에서 활동했을 때도 작업에 참여했고요.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때는 마침 사람들이 재밌는 파티가 어디있는지 찾아다니는 시기였어요. 한명이 놀러와도 그 손님 덕분에 입소문 나기가 쉬운 시대였죠.

그럼 디제이도 그때 직접 하신거에요?
영철: 그렇죠. 동생,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틀었죠. 3~4명의 아티스트로 시작했어요. 밤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1달에 한번씩 너무 재미있었어요. 총 90회 정도 했어요. 거의 7-8년 한거죠. 그걸 시작으로 도쿄 중심지에서도 활동이 가능하게 됬어요. 어쩌면 이게 제 공식적인 디제이 활동의 시작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91~94년 즈음엔 일주일에 6일은 클럽에서 디제잉을 했어요.

평일해도 했다는 얘기네요? 사람들이 평일에도 많이 와서 놀던가요?
영철: 그당시엔 그랬어요.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땐 워낙 붐이었죠. 그런 파티문화가.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즐길거리가 다양해졌죠. 인터넷만 봐도 알 수 있죠.

혹시 어떤 사람들이 주로 왔어요?
영철: 트랜드를 따라가야하는 사람들이 메인이 되었죠. 디자인, 광고, 음악, 패션, 사진, 그래픽 등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왔어요. 그 쪽을 동경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고요. 또 알다시피 클럽은 실제로 와서 느껴야하는 곳이잖아요. 사람들이 어떻게든 찾아왔어요.

그러면 당시에 일본은 Paradise Garage, Larry Lavin, Studio54 등의 영향도 받았어요?
영철: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일본의 Gold란 클럽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DJ Nori가 그곳의 대표적 디제이 였고요. 사람들이 평소에 가지 않는 창고를 빌려 웨어하우스 파티를 했던거죠. 당시엔 사람들이 그런 장소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찾아왔던거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쉬워요.

좀아까 인터넷이 클럽씬에 대한 관심을 조금 분산시켰다고 했는데,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 반대의 경향을 보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K-Pop 말고도 본인이 좋아할만한 다양한 음악들을 찾곤 하거든요. 그게 파티씬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봐요.
영철: 그러면은 정말 다행이네요.

진욱: 그런데 10-15년 전에도 정말 좋았어요. 진짜 멋쟁이들이 많았고요. 명월관, MIA 같은 곳 소울풀 하우스 부터 심각한 테크노까지 정말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어요.

건호: 맞아요.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그땐 정말 하우스가 잘 나왔죠. 언제부턴가 강남에  대형클럽이 생기고나서 부터 좀 뻔해진 경향이 있지요.

하하. 한국에선 ‘뿅뿅이’라는게 등장하는 시기였던 거 같네요.
진욱: 뿅뿅이나 EDM을 하우스로 알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죠. 실제로 재미있는 경험이 많은데, 제가 딥 하우스나 하우스를 틀고 있는데 누군가와서 “하우스 틀어주세요!” 하더군요. EDM을 하우스 혹은 댄스음악을 총칭한다고 알고있던 거에요. 하하.

건호: 최근에 헤드라이너란 프로그램에서도 나왔죠. “하우스는 그게문제야! 지루해.”라고… 아직 하우스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보긴 힘들어요.

프로듀싱도 하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게 됬어요?
영철: 90년 쯤이었던 것 같아요. AKAI S950(샘플러)과 MPC60(드럼머신)을 사서 시작했어요. 당시에 밴드음악도 했었는데, 드럼을 들여놓기엔 무대가 너무 작으니 샘플림과 드럼머신을 사용하게 된거에요.

Little Big Bee의 다른 멤버인 Plaza, Jinguji가 그때부터 함께한 건가요?
영철: 그렇죠! 그때 당시 밴드 멤버였죠.

그럼 Little Big Bee란 이름도 그때부터 쓴건가요?
영철: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땐 이름이 딱히 없었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92~93년 정도였던거 같아요. 어떤 음반사에서 앨범을 내는게 어떠냐는 제안이 왔죠. 당시에 같이 일하게된  프로듀서가 이름을 물었는데, ‘없다!’라고 했어요. 하하. 그래서 그 프로듀서가 이름을 지어준 거죠. Little Big Bee.

하하. 상당히 재밌는 이야기에요. 이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영철: 아무거나 괜찮았어요. 왜 그이름을 지어줬는지 물어봤었는데, 기억이 안나요. 하하. 음악만 좋으면 되잖아요.

그래서 첫 음반은 언제 낼 수 있었어요?
영철: 93년에 어느 컴필레이션 앨범에 Sunshine이란 곡을 실었어요. ‘Pharoah Sanders – Love Is Everywhere’의 곡을 샘플링했죠. 이 곡을 샘플링한 이유는 당시에 힘든시기를 겪고 있던 친구들에게 희망과 에너지를 주고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당시엔 댄스음악 앨범을 낼 수 있는 레이블이 거의 없었어요. 아무래도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서른살이 되기 조금 전의 이야기에요.

그럼 그때쯤 음반사를 직접 차리게 된건가요?
영철: 네. 그때가 제가 Flower Records라는 레이블을 시작하게 될 즈음 입니다. 거의 혼자 말이죠. 95년도 쯤입니다.

Little Big Bee라는 이름의 탄생배경을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Flower Records의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어요. 하하.
영철: 역시나 누가 지어줬어요. 하하. 방송국에서 PD를 하던 선배였죠. 그때도 그냥 받아들였죠. 이름에 관해선 제가 만들어낸 게 하나도 없어요. 하하.

진욱: 아마 형은 그걸 고민할 시간에 술을 더마시려고 했을거에요.

영철, 건호: 맞아, 하하하.

혹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시대가 Shibuya-kei*라는 장르가 만들어지던 시기와 비슷한거에요? Shibuya-kei가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거든요.!
영철: Shibuya-kei는 90년 전후에 만들어졌어요. 제가 레이블을 만들었을 때가 95년도이니 Shibuya-kei가 이미 존재했었다고 봐야죠.

건호: 제가 Shibuya-kei의 존재를 처음 느꼈던게 뉴욕에서였는데, 92~93년도 쯤이에요. 얼마 후 Susi 3003, 3004와 같은 컴필레이션이 나왔죠.

영철: 저는 사실 Shibuya-kei라는 말을 별로 안좋아해요. 그러니까 시부야에는 상당히 다양한 음악들이 있는데 ‘Shibuya-kei’라는 이름이 그 다양한 음악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되어버렸죠.

건호: 요즘 ‘EDM’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편견이 생기잖아요. 아마도 시부야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그 용어를 사용했을거에요.

하우스 음악은 또 별개로 존재했죠?
영철: 그렇다고 봐야죠. Sibuya-kei는 하우스와는 거리가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하는 Flower Records도 그렇고요. 다만, 시부야에서 들리는 하우스 음악들도 Sibuya-kei라고 불릴 수 있다는 걸 좀 염려했던거에요.

건호: 그리고 한국에서 ‘J-House’라 불리던 것이 있었어요. DJ Kawasaki나 Dashi Dance같은 디제이들이 하는 음악들이었죠. 재밌는건 ‘J-House’란 표현이 일본엔 없답니다. 하하. French house, Italo disco도 어쩌면 프랑스나 이태리가 아닌 곳에서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일 거에요.

하하. 실제로는 해당 지역 밖에서 더 그 용어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단 거군요. 실제로 이태리에 있는 식당엔 ‘이태리 식당’이라고 써있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겠네요! 다시 레이블 얘기로 돌아가볼까요? 처음에 만들고 나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할 때는 어땠어요?
영철: 사실 Flower Records가 만들어졌던 95년에 일본은 힙합 붐이 일어났을 때였어요. 그 시류에 힘입어 우리 레코드에서도 힙합 음악을 만들어내곤 했었죠. Naked Dance가 그 중 하나에요.

진욱: 형이 발굴해 낸 아티스트도 꽤 많아요. 큰 회사로 옮겨간 분들도 많죠.

전자맨: 맞아요. 대표적으로 Jazztronik을 들 수 있어요.

영철: 전 좋은 음악, 좋은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려고 했어요. 만약 그들이 잘되어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하겠다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보내줬어요. Jazztronik이 그 중 하나였던거죠. 무엇보다 전 돈 벌이를 하려고 레이블을 만든게 아니에요. 메이저 레이블에서 하는 마케팅이나 돈벌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죠. 그래서 떠난다는 사람들이 굳이 붙잡지 않은 거고요.

혹시 레이블을 운영할 당시 한국에 공연을 온적이 있기도 한가요?
영철: 아니요. 한국에 디제이를 하러 온건 2000년 이후에요. 사실 자세한 스토리는 저보다 건호가 더 많이 알죠. 하하.

건호: 처음 한국에 왔을 때 Compilation Electronika 라는 한일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공항에 딱 들어서는데 누군가 “한국 분이시네요~?”라는 걸 듣고 엄청 형이 감격스러웠다고 해요. 그렇게 공항을 나와 88고속도로를 타며 영감을 받아 작곡한게 ‘Route 88’이에요.

영철: 저는 제 자신을 마케팅 하는데 정말 잼병이에요. 하하

하하 많은 스토리들을 오늘 다 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그이후로 한국의 어떤 곳에서 플레이하였나요?
영철: 첫 공연은 ‘Hi! Seoul Festival’ 이에요. 지금의 World DJ Festival(WDF)가 원래 Hi! Seoul Festival의 한 프로젝트였어요. 지금은 독립적으로 열리고 있지만요.

건호: 클럽은 홍대에 Tool, 강남의 Circle(현재 강남 클럽의 시초 격)의 오프닝을 저와 영철형이 같이하곤 했죠. 2003~2004년 즈음의 이야기에요.

일본과 씬의 모습이 많이 달랐어요?
영철: 많이 다르죠. 일단 한국에서 제가 트는 음악들을 당시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 했어요. 그래도 재밌게 놀긴 했지만요. 한국의 디제이들은 90년대 초 도쿄에서 볼 수 있는 음악들을 보는 듯 했어요.

건호: 그런데 몇몇 우리의 음악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우릴 계속 쫓아다니며 음악 듣고 같이 밥먹고 했어요. 그건 정말 인상적이었죠. 일본에선 그런 반응들을 보기 힘들었거든요. Fukutomi 아저씨가 정말 놀래더군요. 90년대 도쿄에서 보이던 열정적인 젊은 층들의 모습을 한국에서 볼수 있으니까요.

한국이 조금 씬의 형성이 늦었거나, 더 젊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군요. 지금 일본의 하우스 음악 씬은 어때요? 그 씬의 형성 초창기부터 봐온 사람으로써…
영철: 한국과 어느정도 비슷해요. 한국의 EDM 같은 파티에는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와요. 딥하우스 파티 같은 곳은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딱히 좋은 시기라고 볼 수는 없어요.

가게도 하나 운영중인걸로 알고있어요!
영철: 하하. 이런데서 제 가게를 말해도 괜찮나요? Ball(Sibuya)이라고 19년째 운영중이에요. 이곳(Disco Surf)보다 더 작아요. 사운드 시스템 잘 만들어놨어요.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놀러왔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이 질문이 좀 늦게나온거 같기도 해요. 지금 모인 셋은 어떻게 알게 된거에요?
진욱: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죠. 서로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었어요. 처음에 되게 서먹서먹 할 줄 알았는데, 천막에 술판을 벌여놓고, 저를 보자마자 부르더니 술을 막 먹이더군요. 그것도 공연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하하. 그러다 시간이 되어 공연을 하러 올라간다고하고 가버리더군요. 그런데 첫곡에 제가 반해버린거죠. ‘Hamilton Bohannon – Let’s Start The Dance’. 보통 재즈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은 돗자리 펴고 와인마시며 음악을 즐기는 편인데, 형의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다같이 일어나서 춤을 추더라고요.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어요.

영철: 그 이후로도 클럽 Yellow(Tokyo)에서 열린 Flower Records 10주년 파티에서  진욱이와 지누*와 플레이하고 했어요.
*지누: 밴드 ‘롤러코스터’의 베이시스트

건호: 그때도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일본 여자들이 막 달려들었어요. 하하.

진욱: 정말 도쿄에서 활동하는 디제이란 디제이는 다 모여서 음악을 틀었어요. 4~50명 모이다보니 15분 30분씩 짧게짧게 틀고 그랬죠. 너무 환상적인 밤이었어요.

영철: Yellow도 일본에선 legendary club이라 불리는 곳이죠. 현재는 문을 닫았고요.

그러면 음악 성향이 비슷했던게 서로 끌리게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봐도 되나요?
건호: 꼭 그런건 아닌거같아요.

진욱: 제 취향은 뉴욕의 개러지나 디스코, 소울, 펑크  음악들이었어요. 엄밀히 하우스만은 아니었죠. 그래서 뉴욕에 가려고 계획했었어요. 그런데 마침 뉴욕의 씬이 죽어있었죠. 영국 레이블들은 잘 되고 있었고요. 그래서 영국을 가게된 것입니다. 계속 뉴욕을 꿈꾸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뉴욕의 아티스트들이 일본으로 공부하러 온다는 것을 알게된겁니다. 그래서 결국 일본에 가게되었죠. 일본에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상태였어요. 형을 만난건 그 이후이구요. 한국에서 형을 만나고 일본을 다시 찾았을 때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느껴졌어요.

영철: 진욱이가 도쿄에 놀러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어요. 많이 배우고싶다고 했어요.

진욱: 왜냐면 꽤 방황할 때거든요. 음악을 알면 알수록 배워야할게 많다는 것은 알겠는데, 딱히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곳을 찾을 순 없었고요.

영철: 열심히 레코드샵을 데리고 다녔어요. 판을 엄청 많이 사도록 했죠. 팁을 주자면 굳이 비싼 판을 살필요는 없어요. 그것들은 이미 너무 유명한 것들이라 오히려 소장가치가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싼거를 골라도 좋아요. 진욱이에게도 그런것들을 추천해줬고요.

진욱: 사실 당시에 그 음악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좋아하기 시작했죠. 하하.

(사실 우린 인터뷰를 진행하며 계속 여러 음악들을 들었는데, 이 즈음에 그때 당시 샀던 레코드 중 하나를 듣기로 했다. ‘MFSB- Love Is The Message’.)

진욱: 되게 유명한 베이스라인이죠. 하우스, 디스코 음악 등에 많이 사용되었죠.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어요. 춤추기엔 너무 느리다고 느꼈거든요. 형이 이걸 마지막곡으로 트는 걸 봐서, 저도 한번 클로징 때 틀어본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파티가 다시 시작되더라고요. 그 때 알았죠. 이 아저씨가 왜 이 노랠 들으라고 했는지… 하하

본인이 만들었던 곡 중 가장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영철: ‘Waterman’이라는 앨범에 수록된 ‘Scuba’, ‘Calypso Blues’를 꼽고 싶네요. Scuba는 제가 운영하는 Bar의 이름이기도하고,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내키는 대로 만든 곡이에요. 일종의 잼이었죠. 제가 키보드로 Major 7th 코드를 잡고, Jinguji가 베이스라인을 Plaza가 키보드를 맡아 하루만에 만들어진 곡이에요. 그리고 Calypso Blues는 Windy City라는 밴드의 김반장이 보컬을 담당했습니다. 제시카 알바가 나오는 광고의 광고음악으로 쓰이기도 했고요.

디제이를 오랫동안 해왔잖아요? 많은 변화도 있었죠?
영철: 그럼요. 스케줄을 따라가기 벅차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어요. 그와중에도 무엇보다 유지하고 싶었던 건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는 거였어요. 사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으로 볼 때 주류도 아니고, 크게 인정받는 부류라 하기는 힘들잖아요? 그 음악인들이 모두 고생을 많이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디제이 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치유받길 원했어요.

건호: 저도 형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 중 한명이에요. 처음 형을 만났을 때도 형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이었죠. 그런데도 음악적인 열정이 엄청나다고 느꼈어요. 당시에 제가 한국에서 하우스 음악을 내는게 어려워서 괴로워하고 있었거든요. 형을 만나고나서 꼭 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크게 성공한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처음 나온 하우스 음반(Romantic Couch – The House)이란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죠. 저는 지금은 광고음악, 영화음악, 가요까지 다양하게 하고 있지만, 형은 일관되게 한 음악을 하고 있는 데서 또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의 활동계획도 있나요?
영철: 저의 근본은 DJ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집중하게 될거에요. 지금도 도쿄에서 매주 디제이를 하고있으니까요. 그리고 음악을 돈버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잘 팔리는 음악을 만들 생각도 없구요. 무조건 팔려야한다고 가정하면, 온갖 수식어를 붙이게 되기 마련이거든요. 그렇지는 않을거에요. 모호한 표현이지만, 느낌대로 만들고 싶어요.

당신을 정말 장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디제이 후배들에게 조언을 준다면요?
영철: 별로 없어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길 바래요. 따를 수 있는 음악들이 많아졌잖아요? 그리고 제 음악 들으러 오세요! 하하.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영철: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로 기억되고 싶어요. 사실 전 프로모션 할 것도 없는 사람인데, 골목길에서 이렇게 연락을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오는 길에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느꼈구요.

골목길은 씬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에요. 주로 서울의 씬과 그 속의 음악가들을 만나고 있죠. 하지만 일본도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라는걸 저희도 알고있어요. 그곳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왜 많이 다루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철: 알다시피 전 재일교포에요. 어떤 이유로 한국에 한동안 들어올 수 없었고요. 이제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자유로워졌어요. 사실 오늘이 국적을 취득한 후 한국에 온 첫 날이기도 해서 매우 감동적인 날이에요. 앞으로 그동안 일본에서 익혔던 것들을 한국에서 전부 다 보여줄거에요.

조만간 당신을 또 만나볼 수 있겠네요! 오늘 세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vc_column_text][/vc_column][vc_column width=”1/2″][vc_column_text]

We’ve been waiting for this day for a long time! Nice to meet you all!
All: Yes! Nice to meet you too!

We would like to ask you so many things, but we have to start with the beginning. How did you venture into music?
T: I was born and raised in Tokyo. As a little boy, I just loved listening to music. I started collecting LPs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When I turned twelve (late ‘70s – early ‘80s), the disco boom in Japan was in full swing and “Saturday Night Fever” (1977) got released at that time. This musical background allowed me to discover dance music and fusion genres like jazz-funk.

How did your parents play a role in nurturing your musical interest?
T: My parents were members of an opera ensemble called “Geumgangsan.” They would call my mother “the pretty singer from Joseon.” Their friends and co-workers would often come to our home, so I had the opportunity to witness their performances.

Is there a record that sparked your interest in disco music?
T: I would have to say “I Am” by Earth, Wind & Fire was a defining record for me. The famous track “Boogie Wonderland” is on that album. When I heard the song, I thought, “Eureka!” The band incorporated Kalimba sounds that create a great, primitive vibe. Most of my friends were listening to rock music such as The Beatles, the Rolling Stones or Deep Purple, but I wasn’t really into that.

The fact that you were only twelve back then is quite impressive!
T: [laughs] My older cousin was able to sneak me into disco clubs, even though these places were for adults only. It was shocking to see people smoke and dance to disco music. [laughs] My hometown is Tachikawa and the city had a U.S. Air Force base, so American music and culture was very present. I loved it.

G: There were plenty of ballrooms that would only run until 10 at night. They were completely empty after that, so he would rent those spaces from midnight on, and throw his own parties. He printed flyers and handed them out all over town. The parties were all about music and dancing.

T: Tokyo’s club scene began to thrive around the late ‘80s. I think I was nineteen around that time. Music genres like house, hip-hop, rock and afro began to play throughout Tokyo’s clubs. By the way, Tachikawa is not located in the center of Tokyo. It takes about an hour by subway. However, more people than we expected showed up at our events.

That’s really amazing, because there was no internet back then. It mustn’t have been easy to promote a party all over town.
T: Yes, that’s true. We relied a lot on word of mouth to spread information. [laughs] My younger sibling is a famous designer and used to be a member of a band called Reggae Disco Rockers. They helped us a lot with the flyers at that time. She used to work for BOA, but now works for AKB48. Anyways, people were in need of new parties in town and it seemed like everybody shared our parties with their friends, and so on.

So, you organized and played at your own parties?
T: That’s right. My brothers, friends and I were all part of the lineup. The parties went from midnight to 6 a.m., and were held once a month. We’ve had about 90 parties in 7-8 years. When we finally moved to the center of Tokyo, I was playing 6 days a week. This was from 1991 to 1994. This was the beginning of my DJ career.

Six days a week? What a schedule. How were the parties on weekdays? Did a lot of partygoers show up?
T: Yes, of course. The party scene was booming back then. You know, today’s scene is not what it was. We have a lot of other fun activities now like social media.

What kind of people would come to these parties?
T: There were a lot of trendy people such as designers, musicians, photographers and people from other creative fields. You know, listening to music in a club is different from doing so at home.

Do you think Tokyo’s scene was influenced by Paradise Garage, Larry Laven and Studio 54?
T: True. Take Club Gold in Japan for example. DJ Nori was a resident DJ for Club Gold. People used to rent abandoned warehouses to throw their parties. People were more interested in those kinds of parties back then.

You mentioned in a previous interview that the internet and social media distract people’s interest from clubbing in Japan. This is not really the case here in Korea. Through the internet, people get to discover other genres of music, aside from K-pop. People are encouraged to go clubbing.
T: That’s nice!

J: However, the 2000s scene in Seoul was way cooler though. People would listen and dance to soulful house or real Detroit techno at venues like MWG and MIA.

G: I agree. Much more house music was played back then. The scene has dramatically changed since the arrival of big clubs in Gangnam.

I’m assuming you’re talking about a time when “뿅뿅이,” which stands for a kind of EDM, started gaining popularity…
J: Most people in Korea fail to understand the definition of house music. They think EDM equals house music. I recently had a weird encounter. A person came up to me and said, “Can you please play some house music?” while I was actually playing house and deep house. For most people, EDM is the overall umbrella term, covering all styles of dance music. [laughs]

G: One of the DJs on the DJ survival show ‘Headliner’ said, “House music is boring. That’s why I dislike it.” I wonder how many people actually know the roots of music they listen to and where styles develop.

Now, let’s move on to another topic. Can you tell us more about your work as a producer?
T: I started out with an Akai S950 sampler and a MPC60 drum machine in 1990. I actually bought them for my band performances at first. The stages we used to perform on were not big enough for a real drum set.

Were Plaza and Jinguji, the other members, also involved since the beginning?
T: Yes. The three of us formed a team.

Then, how did you come up with the name ‘Little Big Bee?’
T: We didn’t have a name at first. If I remember correctly, it was around ‘92-93 that a label contacted us to record an album. After we told our producer we didn’t have a band name, he came up with ‘Little Big Bee.’ [laughs]

That’s funny. Did you like the name?
T: We didn’t really care. I don’t even remember the meaning of it. [laughs] We made good music. That’s what counts.

Let’s talk about your first album then.
T: We released a track called “Sunshine” that was released on a compilation album in 1993. We used a sample from “Love Is Everywhere” by Pharaoh Sanders. I wanted to send out some positive vibes to my buddies who were hustling. Back then, house music labels were hard to find. But we got support from established names in the industry.

That’s when you decided to start your own label?!
T: That’s right. I founded Flower Records in 1995. I was practically all by myself.

We already know the amazing story behind the name “Little Big Bee.” [laughs] What about Flower Records?
T: Same story! [laughs] Someone who worked as a producer for a broadcasting company suggested the name. I’m not good at coming up with names. [laughs]

J: I guess you were more preoccupied with drinking, weren’t you?

L, G: True! [laughter]

Ok, now we’re talking about the mid-1990s. Was this the time when Shibuya-kei emerged?
T: Shibuya-kei actually started around 1990, so it was already popular.

G: I recognized it for the first time when I was in New York in 1992. Compilations like Sushi 3003 and 3004 were popular releases back then.

T: To be honest, I don’t like the term ‘Shibuya-kei.’ It makes people think that all music coming from Shibuya belongs to this genre, but that’s actually not true.

G: The same goes for the term ‘EDM.’ It confuses people. I guess people who don’t live in Shibuya use that term more often.

Do you think Shibuya-kei is different from house music?
T: Yes, I think Shibuya-kei doesn’t fall under the term of house music. Neither does the music from Flower Records. I’m worried that people might think that the only house music from Shibuya is Shibuya-kei.
G: In Korea, music by DJ Kawasaki or Dash Dance was commonly referred to as ‘J-House.’ What’s interesting is that Japanese people never used this term. [laughs] We should rethink terms like ‘French house’ and ‘Italo disco.’ [laughs]

Like a restaurant in Italy doesn’t refer to itself as an “Italian restaurant,” right? [laughs] But let’s talk about Flower Records again. How did it evolve over the years?
T: The emergence of hip-hop music led us to support musicians like Naked Dance.

J: You discovered many talented musicians and some of them even moved on to bigger labels.

G: True. Jazztronik was one of them.

T: My goal was to introduce good music and good artists. If they wanted to leave the label, they were free to do so. Jazztronik was one of them. I never intended to earn big money. I wasn’t interested in the commercial side of running a label. If one of my artists wants to move on to a bigger label and earn more money, I’m fine with that.

Have you ever performed in Korea when you were running the label?
T: Unfortunately, no. I started coming to Korea after the year 2000. Gunho probably remembers my first visit!

G: He came for a collaboration project called “Compilation Electronica.” I remember he was so thrilled when someone said to him, “Oh, you’re Korean?” He wrote “Route 88” on the 88 Olympic Expressway.

T: Nice! You remember it better than I do!

We need more time to talk next time! [laughs] Can you describe your experience here in Korea?
T: I played at the ‘Hi Seoul Festival.’ You’ve probably heard of the World DJ Festival, which is initiated by ‘Hi Seoul Festival’ although now, they’re held independently.

G: We also played for the openings of clubs Tool and Circle in 2003-04.

How did the Korean scene differ from the Japanese scene back then?
T: There was a big difference at that time. Most clubbers had no idea about our music, but danced anyways. Korean DJs also used to play dance music that we played in the early nineties in Japan.

G: The funny thing was that some fans kept following us, so they tagged along for parties and dinners at times. [laughs] This wasn’t the case in Japan. Fukutomi, who we used to play with, was so surprised because he had never experienced this fanaticism before.

The Korean scene is still young and way behind the Japanese one. What are your thoughts on the current house scene in Japan compared to its beginnings?
T: It’s similar to Korea. Most people, especially the younger generation, prefer EDM over house or deep house music. The glorious days of house music in Japan are over.

What a shame. So you have your own bar, right?!
T: Can I talk about this during the interview? [laughs] I’ve been running a place called Ball in Shibuya for 19 years now. It’s a small space, even smaller than this one here (Disco Surf), but it has a really nice sound system. Everyone who’s reading this interview, you’re welcome to visit Ball anytime!

We should have asked about your friendship earlier on, but what brought you all together?
J: We first met at the Jarasum International Jazz Festival. We were all part of the lineup, but didn’t know each other back then. It was awkward at first, but he called me and we ended up drinking together. The festival hadn’t even started. [laughs] He suddenly stood up and went on stage. The first track was ‘Let’s Start The Dance’ by Hamilton Bohannon. I was so impressed. You know, people usually sit down, relax, talk and drink wine at this festival. But the whole crowd was on their feet. Unforgettable.

T: I invited Jinwook and Jinu* after that to our tenth anniversary party of Flower Records at Club Yellow in Tokyo.
*Jinu: Bassist for the band Rollercoaster

G: We got a lot of hugs from girls that night! [laughs]

J: Almost every DJ from Japan showed up and played at the party. Every one of them played 15-20 minutes, because there were just so many DJs! It was really cool.

T: Yellow is a legendary club in Japan, but it closed down.

Basically, three people with the same taste in music found each other…
G: Not really.

J: I like NY garage, disco, soul and funk music. For me, there’s more than just house music. I was considering making the move to New York, but the scene is losing its character there. So I decided to move to the U.K., even though my dream was to go to New York. While I was staying in the U.K., I had the opportunity to meet many artists from New York who often would go to Japan. In the end, I moved to Japan without any knowledge of the country or its culture.

T: I remember when he arrived in Japan. He was so motivated and eager to learn.

J: I was a bit confused. I wanted to study music, but there was so much to discover and experience. I didn’t have a serious plan.

T: We just hung out a lot and I took him to some record shops. I encouraged him to buy cheap vinyls. The expensive ones are the famous ones. Cheap vinyl is a DJ’s secret weapon.

J: True. In fact, I couldn’t really understand why he was recommending those vinyls at that time. [laughs]

(We listened to many records during the interview. We asked Jinwook to play one of the records he bought back then. He picked ‘Love Is The Message’ by MFSB.)

J: This track has a very famous baseline used in disco and house music. At first, it was a bit awkward to listen to, because it was too slow for me. But whenever I played it, people would go crazy all the time. I really didn’t expect that. So I tried playing it as a closing track, but it made people want to party even more. How unexpected! [laughs]

Can you pick a track that is special to you?
T: I really like ‘Scuba’ and ‘Calypso Blues’ of the ‘Waterman’ album, because Scuba is the name of my other bar. I made it while jamming around. I picked major 7th chords on the keyboard, and Jinguji and Plaza then added their own touches. The track was made in a day. 김반장 from the band Windy City featured on the track ‘Calypso Blues.’ The music was also used for a TV commercial featuring Jessica Alba.

You’ve been DJing for decades. How do you look back on it?
T: The schedule was a bit too hectic at times. But I’ve always tried to spread positive energy. You know, underground artists are not the type to earn big money, receive a lot of attention and perform in mainstream venues. I really want to encourage and send positive energy to those people.

G: I was one of those people. When we first met, he was much older than me. But he was still full of energy and had a real passion for music. Making and promoting house music wasn’t easy for me here, but he really motivated me to keep going. I finally released my very first house music album called ‘The House’ by Romantic Couch in Korea. I’ve been making commercial, OST and pop music now, but he’s always been active in the house music industry. That’s just awesome.

We’re almost reaching the end of our interview, but before we let you go, we’d like to know more about your future plans. Can you tell us more about that?
T: I would like to go back to where I started: DJing. I’ll be more involved with that. I’ll never do it for the purpose of money only though. It might seem ambiguous, but I’m only interested in making music that I like.

You are a true pioneer. Do you have any advice for beginners?
T: Not really. Just do whatever you like. There are so many types of music that you can explore. Just come to one of my parties! [laughs]

How would you like to be remembered?
T: As “Remember, there used to be someone who made this kind of music!” I would really like to thank Golmokgil for this interview. Even though I have nothing to promote, I do appreciate that you invited me as your guest. Before coming here, I was a little worried that I had nothing to talk about.

No worries! Thank you so much for accepting this interview! We’ve been covering the scene here and meeting local artists up until now. Japan has such a unique history and even if Japan is not far away, we haven’t been able to cover the scene yet. This was a great introduction.
T: I’m Korean Japanese and I haven’t been able to enter Korea for a long time. Now that I have acquired Korean nationality, I can come whenever I want. Today is also my first day in Korea after obtaining my Korean nationality. It’s an important day for me.

Let’s hope we meet again soon. Thank you as well as Jinwook and Gu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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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ught to you by Golmokgil – Underground music in Seoul, South Korea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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